신부님, 불만있어요!!!

‘우리 신부님 조금 이상하지 않아…’

‘신부님이 저렇게 하셔도 되나…’

‘신부님 때문에 분심이 들어 성당 나가지 못하겠어…’

신부님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는 교우들의 푸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들이 신부님과 직접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자

교구청에 ‘투서(投書)’라는 형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갈등이 있다면 갈등을 해소해야 합니다.

그냥 덮어 둔다고 문제와 갈등이 없는 것처럼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교회로부터 선택되어 축성된 사제라도

완벽한 삶을 살아 내지 못합니다.

자칫 잘못 보여지는 모습이 오해를 만들어 내고,

인간적인 부족함으로 인한 말과 행동이 교우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공동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신부님께서 사제로서의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본당의 정상적인 대화통로(구역모임, 평협회의, 사목회의 등)를 이용하여

공동체 대표들이 신부님께 의견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신부님의 견해를 진지하게 청해들어야 합니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갈등이나 문제의 요소들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문제가 양산된다면,

교우대표들을 통해 교구청의 사제담당 신부님에게 연락을 취하여 중재를 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사항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갈등원인을 신앙의 눈으로 상식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사제를 보호하며, 공동체가 분열되지 않도록 가능한 침묵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갈등이나 오해는 일방적으로 한쪽의 잘못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성장배경,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언어습관 등의 차이가 갈등을 유발합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느님에 대한 이해(神觀), 교회관(敎會觀,) 사제상(司祭象)의 차이가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생겨난 갈등과 오해는

비방, 욕설, 모함, 한탄 등과 같은 미움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차이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만나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만일 직접 만나서 대화하지 않고 ‘익명’이라는 그늘에 숨어서

각자의 견해만을 이야기한다면 갈등은 심화되고 상처는 악화될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가능한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 신앙인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방식에

하느님의 방식을 보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대화를 시도하는데 있어서 나의 상처만을 치유하거나 보상받으려 하지 말고,

서로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를 먼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갈등과 오해를 해결하려는 이유도,

단순히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하느님 안에 화해함으로써 사랑과 평화를 재생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갈등과 오해의 처음 시작이 각자의 느낌과 견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면,

하느님의 말씀과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함으로써 마무리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갈등이 있을 때, 어떤 방법을 선택하십니까?

내가 받은 상처, 느낌, 생각을 누군가에게 슬그머니, 혹은 불같이 쏟아내십니까?

아니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변화되기를 기다려주십니까?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전부이거나 완전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듣는 것이 사실이거나 진실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기도하고 침묵함이 우선되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오해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신앙인이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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