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심기도

참 자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순간,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여기!”

“지~잉, 지~잉, 지~잉”

세 번의 종이 울렸다. 서울 명동성당 안. 1200여 명이 넓은 성당을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메웠다. 모두 종소리에 맞추어 눈을 감는다. 의자에 앉은 이들은 등을 곧추세우고, 바닥에 앉은 이들은 가부좌 자세로 앉는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서 벗어나 침묵하며 하느님의 현존에 머무르십시오. 하느님은 내면에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기쁨’, ‘주님’, ‘빛’, ‘사랑’과 같은 거룩한 단어를 의식 속으로 불러들이세요. 생각과 느낌과 감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다시 ‘거룩한 단어’를 불러들이세요.”

머리가 하얀 토마스 키팅 노신부의 말이 떨어지자 향심기도 워크숍 참가자들이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좌선 자세로 앉은 수많은 이들이 눈을 감고 침묵 자세로 깊은 묵상에 빠져드는 모습은 어느 사찰의 선방을 연상케 한다.

쥐죽은 듯한 고요가 이어진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무수한 생각들. 의식이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다시 ‘거룩한 단어‘를 의식 속으로 불러들인다.

“평화, 평화, 평화…….”

침묵 속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적막이 흐른다.

워크숍을 진행하는 동안 황길자 씨는 침묵 속에서 잠깐 잠이 들어버렸는데, 잠을 푹 자고 나온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참가자는 여러 생각에 끌려 다니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긴 했지만, 생각을 알아차린 순간 ‘평화’와 ‘평화’를 의식으로 불러들였는데, 어느 순간 지극한 평온이 왔다. 짧은 시간에 이처럼 지극한 평화를 체험해보기는 처음이었다.

향심기도는 이날 워크숍을 이끈 토마스 키팅 신부가 창시했다. 가톨릭 수도회 가운데서도 가장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트라피스트 시토회의 요셉수도원장이었던 키팅 신부는 가톨릭 신자들이 영적인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선이나 명상 등 동양의 수행-수련을 찾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것을 보고, 관상기도를 촉진시키는 수련법을 개발했다. ‘관상’은 ‘하느님 안에서 쉼’으로 해석되며 ‘자기존재의 중심에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깨달음’이다.

이 수련법은 생각과 느낌 등을 알아차린 순간 바로 호흡으로 의식을 돌리는 석가모니 붓다의 위파사나 수행법과 비슷하다. 위파사나가 의식을 호흡으로 맞춘다면 향심기도는 ‘거룩한 단어’에 맞추는 점이 다르다.

사막의 은수자들과 수도자들이 주로 해온 종래의 관상기도는 실제로 방법이 명확하지 않아 수련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향심기도는 누구나 쉽게 수련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향심기도를 보급하는 관상지원단은 관상기도는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사막의 교부들, 특히 합바 이사악과 요한 카시안 등을 거쳐 14세기 <무지의 구름>의 저자와 16세기엔 아빌라의 델서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 그리고 우리 시대에는 토마스 머튼, 그리피스, 토머스 키팅을 통해 전승되어왔다는 것이다.

향심기도는 원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기도’(Centering Prayer)의 번역어이다. 이 기도는 우리 안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 중심으로 들어가는 기도라는 의미다. 그래서 향심기도는 우리의 참자아 안에 그리고 우리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우리의 숨결보다, 호흡보다, 생각보다 가까이 계신 절대 신비이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기도라고 한다. 이렇게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도록 동의해드림으로써 성령께서 나를 대신해서 기도하시도록 맡겨드리는 기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능동적인 기도처럼 주의를 집중하거나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 즉 우리의 온 존재를 하느님께 맡겨드리려고 지향하는 기도다. 무엇인가를 행하는(doing) 기도라기보다는 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함께 머물러 존재(being)하려는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기도인 것이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모든 것을 존재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맡겨드리면서, 그분의 현존과 침묵 속에서 머무는 이 향심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지금까지의 관계 안에 존재했던 우리의 상처와 장애들을 치유해주시고,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온 거짓자아를 소멸시켜 참자아로 부활시켜준다. 그로 인해 내면에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향주 삼덕이 점점 자란다. 그러면 복음적 가치를 추구하고 따르면서도 내적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고 기쁜 삶을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다.

관상지원단이 밝힌 향심기도 방법은 간단하다.

1.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에 동의하는 지향의 상징인 거룩한 단어를   선택한다.

2.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하느님께서 내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에 동의하는 지향의 상징인 거룩한 단어를 의식 안으로 도입한다.

3. 생각을 알아차리게 되면(분심에 빠진 것을 알아차리면) 아주 부드럽게 거룩한 단어로 돌아간다.

4. 기도가 끝나면, 눈을 감고 2~3분간 침묵 속에 머문다.

이날 키팅 신부와 함께 워크숍을 이끈 염무광 씨는 서울대와 이화여대 강사 출신으로 키팅 신부의 <하느님과의 친밀> 등을 번역했다. 그는 “천당은 어느 장소가 아니며 우리 영혼의 상태라는 게 교황의 가르침인데도 외부에서 천당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향심기도는 여기에서 성령과 일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순간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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